Joan Mir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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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1893년 4월 20일 ~ 1983년 12월 25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로셀로나 출신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적 환상을 대표하는 스페인 미술가로 야수파와 입체파,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콜라주, 시화, 삽화, 조각, 도예 등 미술의 모든 해안에 닻을 내림

1893년 4월 2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 이해, 파리의 보라르 화랑이 문을 연다.
1907년 (14세)바로셀로나의 성 누가 미술 학교에 입학했으나,
일시 학업을 중단하고 바로셀로나에 있는 상사에 근무
1911년 (18세)중병을 앓고 몽치리 별장에서 정양
1912년 (19세)바로셀로나에 있는 사립 가리 미술 학교에 입학.
화가 리카르트, 도예가 알티가스와 알게되고, 이해에 최초로 유화를 제작.
또한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의 작품에 접한다.
1915년 (22세)가리 미술 학교를 수료. 리카르트와 공동으로 아틀리에 마련.
그리고 성 누가 서클의 데상 교실에서 공부했는데, 이때 야수파적인 작품을 제작.
1916년 (23세)바로셀로나의 화상, 다르마우에게 인정받아 그림을 팔 수 있는 길을 터놓았고,
이해,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프랑스 미술전을 감상.
1917년 (24세)바로셀로나에서 처음으로 작품 발표회.
당시 다다의 잡지 [301]을 주재한 피카비아와 만난다.
초상화와 몽리치의 풍경화 등 제작.
1918년 (25세)다르마우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 개최.
알티가스가 중심인 [쿠루베 그룹]에 참가
1919년 (26세)이해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 피카소와 친분을 맺는다.
1923년 (30세)살롱 도똔느에 출품. 쟉크 플레베르, 헨리 미라,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과 알게 됨.
여름철 몽리치에서 <경지>등을 제작
1924년 (31세)브르통, 알라공, 엘류아르 등과 알게 되어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
1925년 (32세)파리에 피에르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카탈로그 서문을 반쟈망 펠레가 집필.
또한 피에르 화랑에서 열린 초현실주의전에 출품
1926년 (33세)에른스트와 함께 쟈기레프의 발레 [로미오와 쥬리엣] 무대장치와 의상 제작.
몽리치에서 공상적 풍경화 연작에 착수
1927년 (34년)에른스트, 마그리트 등이 사는 몽마르트르로 아틀리에를 이전
1928년 (35세)네덜란드에 첫 여행,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에 크게 감명받고 <네덜란드의 실내>시리즈 제작에 착수
1929년 (36세)공상적 초상화를 제작. 10월 12일, 파라르 쥰코사와 결혼. 파리의 프랑소와 무통에서 신접살림
1930년 (37년)피에르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1931년 (38세)7월 11일, 장녀 출생. 12월, 피에르 화랑에서 오브제 조각 개인전을 개최.
1932년 (39세)발레 [어린이들의 놀이] 무대장치와 의상을 제작. 뉴욕 피에르 마티스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1933년 (40세)르주 유니에의 [어린시절]을 위해 에칭 제작. 10월, 베르네므 화랑에서꼴라쥬 자품을 전시
1934년 (41세)파스텔화를 시도. 샌드페이퍼에 유채로 그림. 타피스리 <사랑의 제비> 밑그림을 제작
1935년 (42세)카날린 제도의 테네피프 섬에서 열린 초현실주의전에 참가.
1936년 (43세)파리의 인상파 미술관 주최 [스페인 현대 회화전]에 출품. 동판과 메소나이트를 사용한 그림을 제작
1937년 (44세)파리 만국 박람회 스페인 관 벽화를 제작
1938년 (45세)마르크시스 아틀리에에서 동판화 제작
1939년 (46세)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노르망디의 발랑쥬빌로 피난.
1940년 (47세)연작 <성좌>를 제작
1941년 (48세)파르마의 몽리치에서 <성좌>를 완성.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
1942년 (49세)바르셀로나로 귀환
1946년 (53세)<밤의 여인과 새> 연작에 착수
1947년 (54세)최초로 미국을 방문
1948년 (55세)파리로 귀환, 마그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1949년 (56세)바르셀로나, 스위스, 베른 등에서 회고전 개최
1950년 (57세)하바드 대학 벽화를 제작
1952년 (59세)바젤 미술관에서 [미로전] 개최
1953년 (60세)파리, 뉴욕, 베른에서 개인전. 도꾜 국립 근대 미술관 주최 [근대 서양화가 걸어온 길]에 출품
1954년 (61세)독일 여러 도시에서 순회전 개최. 베네치아 비엔날레서 국제 대상을 수상
1956년 (63세)파리, 뉴욕의 화랑에서 [도기전] 개최
1958년 (65세)파리의 유네스코 본부 도판 <낮>, <밤>을 완성.
브류셀 만국 박람회 기념전에 출품
1959년 (66세)도판 <낮>, <밤>이 굳겐하임 국제 상을 수상. 미국을 재차 방문
1960년 (67세)하바드 대학에서 의뢰한 도판을 알티가스와 공동 제작
1961년 (68세)파리, 뉴욕, 제네바에서 개인잔. 이해, 미국을 세 번째 방문
1962년 (69세)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에서 대회고전.
1964년 (71세)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회고전
1965년 (72세)파리, 뉴욕에서 회화 작품전
1966년 (73세)런던에 근작전, 일본 교토서 미로전
1968년 (75세)파리 마그 화랑에서 개인전
1970년 (77세)오사까 만국 박람회 가스관 벽화 제작을 위해 일본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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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에서 이서지 작가의 풍속화 그림을 보자면 신윤복의 단월풍정이 떠오른다.
반면에 작가에 대한 검색을 통해 본 다른 그림들에서는 호안 미로가 떠올랐다.










원색에 동글동글하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림체 때문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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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부터 바실리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바꿈



“나는 하루에 말린 무화과 몇 개만 먹고 살았다. <어릿광대의 사육제>는 배고픔으로 인해 생긴 환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제1회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잡지에도 실리는 등 미로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됨

미로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무렵
유럽엔 야수주의입체주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진행 중.
미로는 각각의 사조에서 모두 영향을 받았지만
사조에 동참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어냄.
미로의 대표작 <성좌>시리즈는 전쟁 중 외교관들 주머니 속에 숨겨져
미국으로 밀수될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 후 잭슨 폴락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침.







작품2가우디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 갔다 온 미로가 예술적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
구엘 공원에는 물결 모양 벤치, 구름 모양 다리, 도롱뇽 모양 분수대가 있는데,
이러한 건축물은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던 미로에게 커다란 감동을 줌.
이 그림에서 커다랗게 그려진 숫자 '8' 모양은 개미를 상징.
그 오른쪽에 있는 부메랑 모양은 초승달을 상징.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으로 칠한 바둑판 같은 바닥은 구엘 공원의 모자이크 타일을 표현.

미로는 기호와 상징으로 그림을 그려 찬사받은 현대화가.
개미 안에는 빨간색의 부리부리한 눈과 알쏭달쏭한 기호가 그려져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림 속에 그려진 커다란 눈이 태양, 영혼, 깨달음 등을 상징한다고 함.



ref.  http://jwaumyeong.tistory.com/3944 [좌 가 운], 중앙일보, google image, 조선멤버스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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